♣ 김천년 교수 은퇴 위로 탐석 여행

2011년 7월 25일

수산리 탐석

월악 계곡에서 산을 타고 수산리 쪽으로 향하였다. 산 옆으로 난 길을 가다보니 길 가운데 무슨 끈 같은 것이 왼쪽 도로와 중앙선에 약간 걸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비켜가려 옆으로 지나가려 하는데 선이 중앙선을 지나오려 한다. 어? 뱀이었다. 더 좌측으로 틀어 지나치며 백미러로 보니 뱀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그냥 도로 횡단을 계속하였다. 마침 다음날 텔레비전을 보니 로드킬 당하는 산 짐승들이 많다고 한다. 차들이 산길을 갈 때는 조심해야 할 듯하다.

가다보니 삼거리에 돌집수석 (김용래, HP: 010-6215-3801, 덕산초중교 밑) 수석가게가 보여서 아쉬운 마음도 달래고 이곳 산지에서는 어떤 수석이 나오는지 구경하러 들렀다. 김 교수님께서 덕산 산지의 대형 변화 입석이 무척 마음에 드시나 보다. 계속 관심을 보이신다. 우리는 다음 탐석 일정이 남아 있어 되돌아올 때 다시 들르기로 하고 다시 수산리로 향하였다.



수산 생태공원 작업장

수산 생태공원 작업장에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이라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기념사진

좌측부터 김 교수님, 월강님, 청완님




개복숭아 나무

개복숭아 나무에는 개복숭아 열매가 없었다.


수산리에 도착하니 작업장에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이라는 생태공원 조성 슬로건인 듯한 간판이 우릴 반긴다. 포크레인 한 대가 보이는데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사하러 간 듯 주인 없이 무더운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먼저 촬영하고 흩어져서 탐석에 들어갔다. 먼저 개복숭아를 따시려던 청완님께서 개복숭아가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살펴보니 아쉽게도 개복숭아 나무에 개복숭아 열매가 없었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하였나 보다. 본래 탐석 일정이 7월 14일이었는데 장맛비가 계속 와서 19일로 연기한 바 있다.

개복숭아가 좋다고 하니 누군가 먼저 와서 다 따갔나 보다. 또 하나의 목적이 아쉽게도 스러져 가는 순간이다. 청완님과 월강님 사모님께서 개복숭아 따오리라 잔뜩 기대하고 계시다는데 안타깝다. 필자 아내는 지금은 없을 거라고 말하여 필자는 낭패감이 그나마 반감되었다. 할 수 없이 우리는 그냥 탐석에 들어갔다. 월악 계곡에서 허탕에 이은 개복숭아 허탕에 왠지 오늘 계속 일진이 나쁠까 슬슬 불안해진다. 필자는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 보니 마지막으로 작업장 쪽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주원규 시인께서는 하류 쪽으로 내려가시고 김 교수님은 포크레인 부근에서 계속 머무시고 청완님께서는 천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셨다.

필자는 우선 포크레인 작업하던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기념석으로 입석 두 점과 소품 경석 한 점 하였다. 좋은 수석은 아니지만 기념석이라도 챙기니 오늘 허탕 일진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며 조금 위안이 된다. 그러나 포크레인 작업하던 곳이 작고 수석감이 더는 보이지 않아 청완님 가시던 방향으로 필자도 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탐석하였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청완님이 벌써 내려오신다. 청완님께서는 수석이 별로 보이지 않아 뽕잎이나 따시겠다고 한다. 청완님께서는 뽕잎이 발 통풍에 좋다고 하여 평소 뽕잎을 다려 드신다.



쉬고 있는 포크레인

점심 시간 잠시 쉬고 있는 포크레인이다.




작업장 사진

포크레인이 작업하는 부근의 사진




수산리 돌밭

이곳 물 많은 곳에서 여인 문양석 탐석


필자는 계속 상류로 올라갔다. 거슬러 올라가다 물이 많이 흐르는 곳에 언뜻언뜻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들어 올리니 사각의 돌에 여인이 구도 좋게 표현되어 있다. 한쪽이 약간 뾰족한 것이 흠이지만 그림은 아주 잘 나왔다. 돌의 외형만 좋다면 거의 명석 수준이다. 돌의 외형을 보완할 수 있는 좌대를 해야 할 것 같다. 처음 출발한 곳을 보니 포크레인 기사가 식사하고 왔는지 포크레인이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지 않아 허기가 지지만 상류로 아직 반도 올라가지 못한 상태라 전화가 올 때까지 더 올라가 보기로 하였다.

위에서 탐석하며 내려오던 수석인 한 분이 필자보고 뭐라고 물어보시는 것 같다. 필자도 좋은 수석 한 점 하셨나고 물어보았다. 사이버상에서 '제천수석동호회'와 '사람과 돌'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간이역 박수호님이시다.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좋은 돌 하였냐고 다시 물어보니 위 작업장에서 속돌 한 점 하였다고 하며 배낭에서 꺼내 보여주신다. 와! 정말 멋진 수석을 하셨다. 축하하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만 가자는 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필자는 간이역님과 헤어져 차 있는 곳으로 갔다.





기념사진

수산에서 만난 간이역 박수호님으로 '제천수석사랑방'과 '사람도 돌' 사이트에서 활동,
아래 규격석 속돌로 변화 좋은 명석이다.


주원규 시인께서는 뽕잎을 따고 계셨다. 뽕잎이 벌레 먹었다고 따다가 그만두셨다. 청완님은 청석 변화석과 칼라미석 각 한 점씩 하셨고 주원규 시인님과 김천년 교수님은 수확이 없으시다고 한다. 김 교수님은 이곳 석질이 마음에 들어 꼭 한 점 기념으로 가져가려 하였으나 돌이 마르니 땅속에 오래 있었던 돌이라 그 색깔이 안 나와 포기하였다고 한다. 김 교수님은 특이하게 내용이나 형태보다는 무조건 석질과 물씻김 위주로 보신다. 그리고 큰 대형석을 선호하시는 경향이다.

우리는 되돌아가는 길에 과거 덕산 삼거리에 있던 수석가게에 들러 구경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수석가게가 보이지 않고 그 자리에 소망건강원이 있었다. 그러나 수석들도 보여 들어가 보니 수석가게가 잘되지 않아 지금은 소망건강원을 한다고 한다. 아쉽지만 기왕 들른 김에 각자 수석 몇 점씩 구매하였다. 부근의 기사 식당에서 식사하였다. 오늘 수확이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지만 모처럼 바람 쐬러 나와 복 중의 날씨에 탐석 삼매경에 빠지니 더위도 잊고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반주로 필자를 제외하고 막걸리 두 병을 시켜 술 한잔하며 기분을 한결 돋구었다. 다시 덕산면 도전리 돌집수석으로 향하였다. 가는 길에 김천년 교수께서는 농협에 들러 수석 대금으로 돈을 찾았다. 돌집수석에 들러 수석 구경하고 김 교수님은 수석 가격 흥정에 들어가셨다. 그러나 가격 차가 너무 나서 흥정이 결렬단계까지 갔고 필자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주원규 시인께서 김 교수가 입석을 좋아하니 이번 퇴직기념으로 주라고 계속 설득하시니 급기야 수석가게 주인께서 입석 수석을 차에 실으셨다. 가격 흥정이 성공한 것이다. 김 교수님은 무척 기분이 좋으셨다. 우리는 드디어 귀경길에 올랐다. 성과는 별로 없어도 탐석을 했던 구매를 했던 나름대로 한두 점씩 해가니 마음이 풍족한 느낌이다. 평일 움직여서 생각보다 그렇게 많이 막히지도 않고 서울에 잘 도착하였다. 김 교수님 위로 탐석을 무사히 잘 다녀온 셈이다.
 



석명: 선바위, 크기: 20x8x9, 산지: 수산리


입석 선바위, 우기에 저 위에서 폭포가 떨어졌을 것이다.





석명: 입석, 크기: 12x23x7, 산지: 수산리

기상이 좋아 탐석하였는데 연출해보니 조금 약한 듯하다.




석명: 거북, 크기: 23x7x12, 산지: 수산리

위에 입석이 다른 연출이 된다. 거북이나 개구리 형상이다.




석명: 병풍바위, 크기: 13x6x10, 산지: 수산리

주름진 병풍바위다.




석명: 장군바위, 크기: 10x13x6, 산지: 수산리

위의 수석의 다른 연출, 장군이 서 잇는 듯한 위상이다.




석명: 새바위, 크기: 13x10x6, 산지: 수산리

위의수석의 다른 연출, 새의 형상을 한 바위다.




석명: 여인, 크기: 14x22x3, 산지: 수산리

여인 문양 잘 나오고 수석 색감도 좋다. 좌측 뾰족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좌대로 보완하는 것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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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인의 샘터 참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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