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도 탐석기 - 고슴도치에 찔리다!(1/2)

2010년 6월 18일

  얼마 전 청완님으로부터 위도 한번 다녀오자는 말씀이 있었다. 위도 하면 다석 김영철님께서 예전에 꼭지 돌 하러 많이 다녀오신 곳이다. 모처럼 부부동반으로 다녀오기로 하였다. 6월 15일 가는 것으로 최종 확정이 되었고 일행은 다석 김영철님 차편으로 해서 청완 김석님 내외분, 월강 주원규님 내외분, 필자 내외 그리고 부평의 정기문님 이렇게 총 8명이다.

부평의 정기문님과 필자 내외는 개봉역에서 7시에 승차하기로 되어 있다. 7시에 맞추어 개봉 북부역으로 가니 일행 모두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이라 다행히 많이 밀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좀 내려가다 화정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을 하였다. 필자가 가장 젊어 청완님께서 회계를 보라 하시어 "예! 알겠습니다. 회계하겠습니다. '하였더니 누군가 '천국이 가까웠으니! ' 라고 말하여 한바탕 웃었다.

우리는 즐포 IC에서 나와 격포 선착장으로 향하였다. 배 출항시간을 11시로 안 우리 일행은 11시 30분 전이라 조마조마하며 격포항까지 갔는데 다행히 배 시간이 11시 40분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일행은 그곳에서 간단한 간식과 막걸리 한 잔씩 하였다. 추억의 국화빵을 팔아 추억은 하나씩만 먹었다. 추억을 두 개씩 먹으면 추억 속에 갇혀버려 좋지 않다.

조 막걸리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 한 잔씩 하였다. 그것으로 부족하다 하여 뽕 막걸리 한 병 추가로 사서 배에서도 한 잔씩 하였다. 막걸리 이름도 참 다양하다. 배는 250인승으로 크고 차도 승선시켰다. 파도도 조용하고 비가 온다고 하였는데 하늘도 맑다. 여행하기 최적이다. 특이한 것은 이곳은 갈매기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도 파장금항까지는 50분 걸린다. 역시 바다는 넓고 무인도를 바라보며 달리는 기분은 언제나 상쾌하다. 아직 휴가철이 아니어서 배는 한산하다.



격포항 여객 터미널






격포항 앞바다와 채석강

오른쪽 바위가 책을 쌓은 것 같이 보인다 하여 채석강이라고 하는데
크게 확대하여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 정도로 아쉬움을 달랜다.




여인천하 기념사진

좌측부터 청완님 사모님, 필자 아내, 월강님 사모님




기념사진

좌측부터 청완 김석님, 정기문님, 다석 김영철님, 월강 주원규님
아래 참수석 필자




멀어지는 격포항




차를 실은 배 앞쪽


위도항에 내려서 다석님 단골집으로 가서 민박을 정하고 점심을 예약하였다. 방은 두 개 얻어 각 삼만 원씩으로 적당하였다. 점심을 하려고 보니 꼭지 돌을 좌대하여 붙박이 진열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보기 좋은 꼭지 돌이 많았다. 그런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모두 나름대로 한 점씩 기대를 하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하였다. 주인아저씨가 바빠서 안내를 해주지 못한다고 한다.

다석님께서 과거에 몇 번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다니기로 하였다. 먼저 찾아 나서는 중에 바닷가에 작은 돌밭이 보여 차를 세워놓고 내려갔다. 그러나, 그러나 역시였다. 아무리 오래 하였어도 돌 욕심은 조금씩 있어서 웬만하면 기념석이라도 가져올 텐데 정말 빈손이다. 일행 중에 술 좋아하시는 분이 계시어 잠시 모여 술 한 잔씩 하였다. 그러는 중에 주원규 시인님 사모님께서 잘못 넘어지시어 손목을 접질리셨다. 손이 금방 부었다.

우리는 탐석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발생하여 치료가 더 중요하다며 철수하여 병원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마침 보건소가 있다고 하여 찾아갔다. 보건소라서 엑스레이는 찍어보지 못하고 그냥 기본적인 치료만 받았다.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탐석할 때 혼자 민박집에서 쉬시는 것보다 그냥 차에 계시는 것이 편하다고 하여 여자분들은 주변에서 나물을 캐기로 하였다.
 





식당 꼭지돌 장식장

소품 꼭지돌을 좌대로 멋을 내어 연출하니 그런대로 볼만하다.
그러나 모두 옛날 돌이다.




도로 가에서 보이는 돌밭






돌밭

돌밭이 거칠고 수석감이 없다.




잠시 휴식을

수석감은 없고 잠시 짬을 내어 술 한 잔씩 하였다.




외도 보건소


우리는 2차 돌밭을 찾아갔다. 이곳은 씨알이 작았다. 모처럼 기념사진 촬영하고 다석님께서 기념석 한 점 선물로 주셨다. 소품 왕눈인데 처음에는 수석감으로 약하지 않을까 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정말 이 정도도 어렵다. 이곳 돌은 모두 소품이라서 좌대로 많은 부분 보충하여야 한다. 좌대를 잘 짜면 그럭저럭 기념석은 될 듯하다. 특이하게 이곳은 메꽃 비슷한 꽃이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었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비상이라고 하며 빨리 오라고 한다. 놀라서 급히 뛰어갔는데 이번에는 큰일이 아닌 것을 알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앞으로는 장난치지 말라고 하였다. 여자분들이 보건소에 한방 치료도 있는데 침을 맞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보건소로 가자고 한다. 우리는 다시 철수하여 보건소로 향하였다. 접수하고 치료를 하려니 오늘 1차 외과 치료를 하였기 때문에 이중 치료가 된다고 내일 9시에 오라고 한다.







2차 돌밭

돌이 콩알처럼 작다. 수석감이 이곳도 없다.






갯바위 바닥의 기묘한 변화






해안가의 아름다운 풍경








기념사진

가운데 좌측부터 월강 주원규님, 정기문님, 청완 김석님,
아래 사진 정기문님과 필자 자리 바꿈




기념사진

다석 김영철님




석명: 왕눈이, 크기: 3.5x6x3, 산지: 외도

다석님으로부터 돌밭에서 선물 받은 석인데 정말 이 정도도 어렵다.



시간은 대략 5시 되어 날은 훤하지만 우리는 다시 탐석 갈 수도 없어 하릴없이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때 8명이 회를 먹으려니 한 15만 원이 소요되었다. 예산이 오버 되어서 그냥 저녁을 먹기로 하였는데 다석님과 정 선생님께서 여자분들이 왔다며 회를 쏘셨다. 어이쿠 감사^^. 그래도 남자들은 회비를 조끔 더 걷었다. 회계를 잘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식사 중에 이런 이야기로 회계를 잘하겠습니다. 회계하라! 하였더니 누군가 '천국이 가까웠으니...'하였다. 마침 이때 다석님 바지 접힌 곳에서 작은 돌이 나와 이 돌이 여기까지 따라왔네 하며 내놓은 것을 청완님께서 받아 보시려다가 상추 속으로 떨어뜨렸다. 다시 찾아서 버린다는 것이 옆의 양념 통에 맞아 스리쿠션으로 다석님 술잔에 정확히 홀인 입수 하였다. 이 일이 동시에 일어나 우리는 순간 와! 하고 모두 웃음바다가 되었다. 다석님께서는 그냥 술잔을 완샷하고 작은 돌을 버리셨다.

저녁을 마치니 잘 때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남자들은 잠시 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어슬렁거리며 가는데 트럭에다 아귀 등을 잔뜩 싣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이 예기하면서 몇 마리 샀으면 좋겠다고 하며 쫓아갔다. 그곳에서 다석님께서 여러 곳의 사람들이 놀러 왔다고 하였는데 마침 부평 분이 있으셨나 보다. 고향 분이 계시다며 아귀 몇 마리를 그냥 주셨다고 한다.

역시 시골 인심이 후하다. 그래서 그냥 갈 수 없고 그곳에서 갑오징어 회로 술 한 잔씩 하기로 하였다. 결국, 얼떨결에 2차가 된 셈이었고 필자는 확실히 술이 과해졌다. 그런 중 청완님께서 남자들끼리 먹는 것이 미안하다고 게를 3마리 삶아가자고 하셨다. 게를 삶는 동안 나와 몸무게를 줄이며 하늘을 보니 초승달과 별이 아름답다. 꼭 터키 국기 같다.
 



식후 잠시 쉬면서




2차 중에 바라본 밤하늘


삶은 게와 선물로 준 아귀를 갖고 다시 민박집으로 향하였다. 아귀는 제법 무게가 나갔다. 식당에다 아귀로 아침과 점심 매운탕을 부탁하고 양념값은 드리겠다고 하였다. 민박집으로 가서 게를 여자 분들을 드리고 우리는 구경하였다. 나중 맥주가 필요하다고 하여 아까 사다 놓고 남은 맥주 큰 것 한 병을 가져왔다. 나중에 맥주가 남다 보니 우리가 또 마시게 되었는데 완전한 3차가 되었다.

우메~ 저녁때 필자가 징하게 술을 드시는 것을 보고 하긴 '인류에 해로운 술 빨리 마셔 없애야죠 하였더니 '소중한 술 두고두고 아껴서 마십시다! '하여 한바탕 또 웃었다. 모두 마치고 정말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왔지만 그런 와중에도 오늘 마지막 회계를 하고 씻었다. 씻고 들어와 보니 누군가 벌써 이불을 폈다. 그렇게 위도의 첫날밤이 깊어만 갔다. 정말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식당의 꼭지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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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인의 샘터 참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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