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상류 수산 탐석기

2007년 9월 13일


최근에 시인 청완 김석님과 신촌수석 임달웅 사장님 참수석 필자 이렇게 셋이서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금이 생겼다. 청완님께서는 발에 통풍이 있으신데 통풍에 좋다는 뽕잎을 따러 갔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수산 부근에 뽕잎이 많다고 하여 우리는 수산에 가서 탐석도 하고 뽕잎도 따기로 결정하고 영암 강병력님께 말씀드려 함께 가기로 하였다. 그러고 보니 수산은 1년 반 만에 가게 된다. 그곳은 각진 돌이 많아서 그간 우리 수석회에서는 잘 가지 않았던 곳이다. 최근 비가 많이 와서 강에는 물이 많을 것 같아 계곡 쪽을 주로 살펴보기로 하였다.

탐석 전날 신촌수석 임달웅 사장님께서 집 수리관계로 공사가 지연되어 탐석 동행이 힘들다고 
연락을 주시어 아쉽게도 한 명이 빠진 셋이 출발하게 되었다. 6시에 신촌수석에서 만나기로 하였기에 임 사장님께서는 일부러 일찍 나오시어 가계 문도 열어 놓으시고 커피도 한 잔씩 주시며 우리 일행을 환송해주셨다.

수산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여 수산부근까지 곧장 열심히 달려갔고 식사할 곳을 찾는 중에 월악 계곡에서 포크레인 공사하는 곳이 눈에 띄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음에 잠시 내려가서 보았다. 그러나 작업이 소규모 공사이고 둘러보아도 수석감이 보이지 않아 그냥 바로 철수하였다.

어렵사리 아침 식사가 되는 곳을 찾았다. '어제보다 좋은 날' 기사 식당이었는데 손님은 별로 없었으나 시골 인심에 서비스가 좋아 식후 숭늉에 직접 재배하였다는 사과도 하나씩 주셨다. 아침을 기분 좋게 먹으니 룰루랄라♬~ 오늘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역시 친절과 배려는 다른 사람을 이렇게 즐겁게 해준다.

두 분은 수석을 시작하신 지 오래되시어 이곳 산지들에 대해서 잘 아셨다. 필자는 수산 큰 강쪽에 몇 번 와본 게 고작이다. 첫번째 탐석지로 월악 계곡 한 곳을 찾아갔는데 몇 일전 비로 물이 많아서 탐석이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물이 빠졌을 수산 계곡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개울에서 작업하는 포크레인

길가 한쪽에 차를 세우고 두 번째 탐석지인 수산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넓지 않은 개울에 수로 벽 공사를 해놓아 수석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돌진 앞으로 하며 각자 탐석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는 각진 돌이 많아 수마가 된 돌로 수석감을 찾아야 한다.

열심히 탐석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이곳 지리를 잘 아시는 두 분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혼자서 다른 곳을 멋대로 가볼 수도 없는 필자는 할 수 없이 그냥 이곳 계곡을 정밀 탐석하기로 하였다. 탐석울 해보니 필자 생각에 수석감 찾기가 강원도쪽 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다. 겨우 변화가 있는 청석 소품 2점과 개초코 소품 1점 하였다.

강돌 경석의 선호도가 점점 떨어져 적당한 크기에 잘 생긴 수석이 아니면 요즈음은 대접 받기 어렵다. 이렇게 적은 소품이 얼마나 오래갈까 생각하고는 이곳에도 그림돌이 나오겠지 하며 이번에는 문양석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드디어 물속에서 문양이 될만한 돌이 눈에 아른거려 들어서 닦아 보니 적당한 크기의 강아지 그림이 나와 쾌재를 부르고 더 자세히 살펴보니 돌의 크기는 적당하지만 외형이 너무 각 졌다.

이곳 돌로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취석하였다. 더 이상은 수석감이 눈에 띄지 않아 마을로 향하는 좁은 수로로 접어들어 가니 청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금방 뒤따라 오시어 앞서 가시더니 그만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신다. 나올 때 담벽으로 되어 있는 개울 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미처 장화를 준비하지 못하여 샌들을 신었는데 개울 물속에 다니다 뒤에 끈이 풀어졌다. 풀린 상태에서 개울 벽을 타고 올라가다 미끄러져 엄지발가락을 다쳐서 피가 조금 흘렀다. 속된 말로 피를 보았다. 에궁~ 우리는 다시 수곡리로 옮겨 수곡 2교 다리에서 차를 세우고 아래 개울로 내려갔다.

가을 풍경(월악계곡에서)

필자는 다리 위에서 살펴보니 양쪽으로 모두 개울 벽 공사가 되어 있어 수석감도 없을 것 같고 엄지발가락도 다친 상태라 그냥 차에서 쉬기로 하였다. 좀 있다가 영암님도 오시고 청완님은 어디서 뽕잎을 따서 오셨다. 밭 위쪽으로도 뽕나무가 있어서 두 분은 뽕잎을 더 따셨는데 필자는 다친 발로 이미 모든 흥미를 잃었다.

청완님께서 8시까지 아드님이 근무하는 회사가 있는 여의도에 가서 아드님 차에 짐을 내려야 하고 가는 도중 목계에 들러 수반도 구입하셔야 하기 때문에 서서히 귀경하기로 하였다. 가는 중에 보니 충주호는 물이 가득 차서 장관을 이뤘다. 그래서 월악의 한 휴게소에서 잠시 멈춰 충주호 구경도 하고 기념사진도 촬영하였다.

우리가 쉬었던 휴게소에는 건물 전망대에서 여자가 누워 있는 듯한 월악산 정상이 보인다는데 그에 대한 설명문이 있었다. 우리는 다시 서울로 향하여 가다가 충주보조 댐이 내려다 보이는 중앙탑 휴게소에서 칡 냉면으로 점심을 하였다. 휴게소에는 많은 정원석이 보여 기사 정신이 발동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촬영하였다.

휴게소에서 내려다 보니 충주보조 댐에서 몇 개의 수문을 열고 물을 방류하고 있었으며 그 사실을 안내 방송 하고 있었다. 한쪽 건천 돌밭에는 낚시꾼이 두 명이 있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귀경 시간이 좀 이른 것 같아 식사 후 잠시 탐석하기로 하였다. 

돌밭은 휴게소 옆으로 내려가는 곳이 있었다. 물을 방류하고 있어 건천의 돌도 점점 더 잠겨가고 있었고 오래 노출된 곳이어서 역시 수석감이 없었다. 포기하고 다시 목계로 출발하여 수석가게에 들러 수석 구경도 하고 강변수석에서 청완님은 수반과 모래를 구입하셨다.

일을 보고 나니 거의 4시가 되어 이제 부지런히 올라가야 할 것 같아 귀경 길에 올랐고 여의도에 들러 청완님 짐을 내리고 신촌수석에 도착하였다. 시간이 늦어서 저녁식사를 하고 먼 일산으로 가시는 청완님을 배웅하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오늘은 두 분을 모시고 뽕도 따고 탐석도 하여 소정의 성과를 이룬 하루였다. 그리고 수산 부근의 남한강 상류는 이제는 가기 어려운 산지로 다시 한번 더 확인된 셈이 되었다.


수산에서 탐석한 수석

중앙탑 휴게소 정원석 ← 곧 올리겠습니다.^^


어제보다 좋은 날 기사식당

기사식당 앞의 정원석



수산 개울

각진 돌이 많은 곳으로 어느 정도 수마가 된 수석감을 찾는다.

수곡리 개울

양쪽으로 담을 싸 놓았다

충주호

충주호에 물이 가득하다

휴게소의 동물

휴게소에는 오리와 토끼가 있었다. 토기는 잠자고 오리는 바쁘게 다닌다

월악의 휴게소 안개판

안내 판에는' 월악 휴계소 건물 좌측 식당 뒤 1층이나 2층 전망대에서 뒷편을 보게 되면 제일 높은 산이 월악산 정상인데 그 모습이 여자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음기가 서린 산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옛 선조들이 이 산을 달래기 위하여 송계 덕주사에 가면 남근석을 3개 세워 놓았는데 일제강점기 때 윗부분은 잘리고 지금은 뿌리만 남아 있다.'고 쓰여있다.

월악의 휴게소에서

충주호가 내려다 보이는 휴게소에서

월악의 휴게소 코스모스

월악의 휴게소에도 가을이 성큼 찾아 오고 있었다

중앙탑 휴게소

충주보조댐이 내려다 보이는 중앙탑 휴게소 전경

휴게소의 수석

휴게소 식당에는 수석과 정원석들이 많이 있었다.

충주 보조댐

믈을 방류하며 안내 방송을 하고 있으며 돌밭네 낙시꾼들이 보인다.

충주 보조댐에서

청완님 기념 사진

충주 보조댐 돌밭

오래 노출된 건천이라 수석감이 보이지 않는다



 

수석인의 샘터 참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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