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여름휴가 3일차(월송정→망양정→호산→촛대바위)

2007년 7월 16일


아침에 일어나니 에어컨을 틀고 자지 않아서인지 개운하였다. 날씨도 개어서 중부지방은 비가 온다고 하지만 이곳은 비가 오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여유 있게 9시에 출발하기로 하였다.

올라가는 길은 올 때와 달리 동해안을 타고 올라가다 동해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영동 고속도로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숙소의 주변 관광안내도를 보니 평해의 월송정과 울진의 망양정이 관동팔경 중의 하나라 한다. 그래서 그 두 곳을 거쳐 올라가다 호산 해수욕장에서 잠시 놀다 삼척의 촛대바위를 마지막으로 관광을 마치기로 하였다. 아래 숙소에서 본 월송정과 망양정 관광 안내 글을 이곳에 옮깁니다.


월송정 관광 안내 글

신라시대 화랑들이 이곳의 푸른 소나무와 흰 모래밭에서 웅지를 품던 도장으로도 알려지고 있는 월송정은 숙종 때 송강 정철이 이곳을 찬미한 관동팔경 중의 하나로 정자 위에서 바라보는 빽빽이 우거진 노송림과 명사십리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은 가히 손꼽을 만한 명승지이다.

참고: 관동팔경(강원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에 있는 8개소의 명승지)

평해 월송정(越松亭), 울진 망양정(望洋亭)
삼척 죽서루(竹西樓), 강릉 경포대(鏡浦臺)
양양 낙산사(洛山寺), 간성 청간정(淸澗亭)
고성 삼일포(三日浦), 통천 총석정(叢石亭) ← 두 곳은 북한에 위치




평해 월송정

월송정 전경, 아래 현장 안내 판에 있는 글

월송정

소재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관동팔경의 제일경인 월송정은 고려시대 이래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유람 지로서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정자이다. 중도에 퇴락한 것을 조선 연산군 때에 강원도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하였지만 다시 황폐해져서 1933년에 이 고을 사람 황만영.전자문 등이 재차 중건하였고, 일제 강점기 말기에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에 의해 철거되어 터만 남아 있었다.

그 후 1969년에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으로 2층 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졌으나 원래의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고, 1980년에 현재와 같이 다시 세웠다. 이 정자는 사선이라고 불린 신라시대 영랑.술랑.남석.안상 등 네 화랑이 유람했다는 설화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으로, 만 그루의 소나무가 십리가 넘는 흰 모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다고 한다.

월송이라는 이름은 사선(四仙)이 달밤에 송림(松林)에서 놀았던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하고, 월국(越國)에서 솔씨를 가져다 심었기 때문이라는 향전(鄕傳)도 있다.




월송정 안축의 시

월송정 천정 위에 안축의 시가 붙어 있었다.

안축의 시

옛사람 간 곳 없고 산천은 의구한데
천 년 전 옛 자취 송정 오직 남았구나
겨우살이 다정한 듯 서로 엉켜 아니 풀고
형제대가 마음 맞아 좁쌀 방아 찧는구나
화랑들은 신선처럼 학을 구워 즐겨 해도
초부들의 도끼로야 용 잡을 뜻 생각 말라
머리털 반백 되어 예 놀던 곳 다시오니
넓은 바다 푸른 솔은 옛모습 지녔고녀



월송정 푸른 소나무

푸른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다



솔 밭에 버섯

솔잎이 떨어져 있는 곳에는 특이한 버섯들이 자라고 있다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울진의 망양정으로 향하였다. 망양정은 망양 해수욕장 맞은편에 있으며 계단으로 올라가게끔 되어 있었다. 아래 숙소에 있던 망양정 관광 안내 글


망양정 관광 안내 글

망양정은 성류굴 앞으로 흘러내리는 왕피천을 끼고 동해의 만경창파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져 있으면, 그 경치가 관동팔경 중에서 제일가는 곳이라 하여 숙종이 「관동제일루」라는 친필의 편액을 하사하였다 하며, 숙종과 정조가 친히 지은 어제시와 정추의 망양정시, 
정철의 관동별곡초, 채수의 망양정기 등의 글이 전해오고 있다.





울진 망양정

망양정 전경, 아래 현장 안내 판에 있는 글

망양정

소재지: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

이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을 듯 앉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그 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란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御製詩),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등이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백납병(百納屛」.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에 있는 망양정도(望洋亭圖)가 유명하다.




망양정 앞바다

망양정에서 바라 본 망양 해수욕장 쪽 바다 풍경, 전망이 아름답다.



망양정에서

망양정에서 필자가 포즈를 취하고 기념 사진을 찍어 보았다



금은화

망양정 주변에는 인동초 금은화가 보였다.

경북에서 관동팔경 중 2경 관람을 마쳤으니 이제 호산 해수욕장으로 쭉 올라가면 된다. 올라가는 도중 아내가 지난번 친구들과 백암에 놀러 왔을 때 문어를 사먹었는데 그리 맛이 있었다며 문어를 사고 싶다고 하여 올라가면서 있을만한 어항에 들렀다. 처음 죽변항에 들렀으나 없었다. 




죽변항 전경

죽변항은 좀 작은 항구였다.

다음 일정인 죽변항 위 호산 해수욕장에 들렀다. 호산 해수욕장에 들러서 해안가를 바라보니 아쉽게도 돌밭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월천리 쪽으로 내려 가 보려고 하였으나 해안가에서는 월천리로 가는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냥 호산 해수욕장에 주차를 하고 바닷가 모래밭을 살폈다. 장마철에다 철 이른 때라서인지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돌이 없으니 그냥 가자고 하는데 1시간만 놀다 가자고 하였다. 아내는 조금 있다가 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파도가 좀 치는 편이었고 각종 해조류가 떠내려 온 곳에 듬성듬성 돌들이 보이는 것을 살펴 나갔다. 욕심 같아서는 월천리까지 가고 싶었는데 거의 1시간가량 지나니 전화가 와서 할 수 없이 서둘러 차 있는 곳으로 왔다. 오면서 보니 작은 돌밭이 서서히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호산 앞바다 갯바위

무척 흐린 날씨에 호산 해수욕장 앞 갯바위에 파도가 와서 부딪친다



호산 해수욕장

모래 사장에는 파도에 떠내려온 해조류와 그 사이 사이에 돌들이 조금씩
보였다. 돌밭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호산의 염소 떼

검은 염소를 풀어 놓아 방목하고 있었다



호산 돌밭

돌아갈 때쯤에 작은 돌밭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운이 없어 때를 잘못 맞춘 것 같다. 그저 기념석 몇 점한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내는 혼자 기다리게 하였다고 뾰로퉁해 있었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삼척에 촛대바위 관광을 위하여 출발하였다. 올라가는 중에 석맥회원들이 호산에 오면 들른다는 임원 항에 들렀다.



임원항 전경

임원항의 풍경, 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그러나 임원 항도 작아서인지 문어 파는 곳을 찾지 못하여서 다시 출발, 삼척 항에 들러 어시장을 찾아가니 문어가 그물망에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그래서 아내가 원하는 것과 아이들을 위해 매운탕 거리도 사서 다시 출발하였다.

물어서 촛대바위를 찾아 갔는데 추암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촛대바위는 촛대처럼 기다란 그런 바위가 아니어서 조금 실망이 되었다. 아마도 위치를 잘못 찾은 듯싶다. 갈 길이 머니 할 수 없이 이번 하기 휴가관광의 모든 일정을 이제 마치고 올라가기로 하였다. 






촛대바위

추암 해수욕장에서 바라본 촛대바위

올라오다 점심을 먹고 동해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였는데 2시 반, 광명의 집에 도착하니 6시였다. 3시간 반 정도 걸렸다.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였는데 비가 오다 말다 하였고 카메라(가짜 포함)는 왜 그리 많은지, 아내가 카메라 숫자만큼 '카메라'하고 말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아예 정속으로 운전하였다. 

아내는 이번 여행에서 둘째 날 여행이 가장 좋았다고 하니 필자의 생각과 정반대다. 암튼 부부가 여행을 단둘이 정말 오랜만에 무사히 잘 다녀왔으니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본다. 
(부부 여름휴가 여행기 끝)



 

  수석인의 샘터 참수석http://chamsuseok.com.n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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